“작가의 한숨까지 AI가 옮길 수 있을까요”…’책도둑’이 던진 질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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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문학 번역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서도 이를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아 논란을 빚은 고전문학 애플리케이션 ‘책도둑’ 사태가 출판계의 AI 활용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올해 초 생성형 AI로 단기간에 대량의 책을 제작하는 ‘딸깍 출판’ 논란이 일었다면, 이번에는 AI 번역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독자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 “AI 번역이었다면 안 샀다”…책도둑이 드러낸 ‘투명성’ 논란

지난해 말 서비스를 시작한 ‘책도둑’은 2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평생 이용권 1만9800원·1년 이용권 9900원)으로 수백 권의 고전을 평생 소장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이용자를 모았다.

하지만 서비스 초기부터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번역 결과물을 두고 AI 번역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책도둑 측은 “아직 AI 수준이 낮다”며 “밤을 새워가며 작품을 직접 읽고 수정하는 재번역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명문대생이 번역을 다듬고,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가 번역을 검수한다고 밝히며 AI 활용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자 책도둑은 결국 번역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용자들에게 사과했다. 기존 구매자를 대상으로 전액 환불을 진행하고 신규 회원 가입과 결제도 중단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AI 번역인 줄 알았다면 구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논란의 핵심은 AI 사용 자체보다 이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투명성’에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AI 기본법상 제31조 ‘투명성 확보 의무’ 조항으로 창작물에 AI를 활용했을 경우 이를 식별할 수 있는 워터마크를 삽입하게 하지만, 출판산업이 법상 AI 사업자인지 이용자인지 모호하다. 또 이를 출판물 번역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있다.

박정인 덕성여대 AI DynaInfo 연구소 교수는 “출판사가 자체 생성형 AI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도 AI를 활용해 번역문을 생성한 뒤 이를 전자책이나 출판 서비스로 제공했다면 AI 이용사업자에 해당할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원문을 적법하게 확보하여 AI 번역도구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현행법상 일반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다”면서도 “다만 문학 번역은 소비자가 책의 품질과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AI 활용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학 번역에서는 번역 주체와 방식 자체가 중요한 상품 정보”라며 “번역가의 해석과 어휘 선택, 문체, 시대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작품의 품질과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출판계는 AI 활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문학 번역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도스토톕스키 완역 김정아 “문학, AI가 번역할 영역 아냐”

10년에 걸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을 완역한 김정아 번역가는 뉴시스에 “문학은 아직 AI가 번역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번역한 문장과 AI 번역 결과를 직접 비교해 본 경험을 전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AI 번역이 굉장히 매끄러워 보인다”면서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틀어 놓은 문장이나 단어의 순서,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감정은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러시아어처럼 어순에 따라 강조점과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는 앞뒤 맥락과 작품 전체를 함께 이해해야 하는데, AI는 이를 완전히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번역가는 번역을 원작자와 나누는 긴 대화에 비유했다.

“저는 마음으로 번역합니다. 번역을 하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멎는 순간이 있습니다. AI가 성실한 번역을 하지만, 작품을 읽으며 번역가가 느낀 감정과 순간은 전할 수가 없어요. 문학은 결국 누가 번역했는지가 중요한 장르입니다.”

◆계약서도 바뀐다…AI 번역 기준 만드는 출판계

출판 현장에서는 AI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시각도 나온다. 해외 원고의 줄거리와 소재를 파악하거나 출간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이미 AI가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성훈 한국출판인회의 AI미래전략위원장은 “‘책도둑’ 논란의 핵심은 AI 사용 자체보다 이를 숨긴 투명성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AI는 해외 원고를 검토하거나 내용을 파악하는 등 보조적인 영역에서는 이미 활용되고 있다”면서도 “인간 번역은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결과물의 완성도에서 여전히 차이가 있다. 아직 번역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번역 과정에서 AI를 사용했는지를 기술적으로 판별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윤 위원장은 “결국 계약과 당사자의 고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출판사의 계약 관행도 바뀌고 있다.

해외 문학을 출간하는 일부 출판사는 최근 번역 계약서에 AI 활용 관련 조항을 넣기 시작했다. AI를 자료 검색이나 참고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번역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할 경우 출판사에 이를 알리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내 대형 출판사도 번역가와 계약을 맺을 때 AI 활용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해외 출판사와 맺는 저작권 계약은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출판인회의도 AI 활용 기준 마련에 나섰다. 기존에 논의해 온 AI 활용 표시 기준을 번역은 물론 그림과 디자인 등 출판 제작 전반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AI를 어느 공정에서, 어느 정도 활용했는지를 보다 세분화해 독자에게 알리는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출판사와 작가 등이 참여하는 AI 활용 윤리 기준을 마련하고, 문체부가 개정을 추진하는 출판 표준계약서에도 번역 과정의 AI 활용 기준을 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xcuseme@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731_000373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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