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 삶 속에 제가 어디 있을지 모르겠지만, 길거리나 버스,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고, 저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이 멋지고 행복했던 시간 잘 간직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항상 기도드리겠습니다.”
거친 포효로 시대를 풍미했던 록의 전설 임재범(64)이 무대 위에서 건넨 마지막 고백은 이토록 소박했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 17일까지 이어지는 ‘나는 임재범이다’ 서울 앙코르 공연은 6개월 대장정의 최종장이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작별 인사는 고독한 거장의 선언이라기보다 한 인간의 다정한 당부였다.
임재범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내내, 밴드가 연주하는 마지막 곡 ‘인사’의 선율 위로 객석의 눈물 섞인 떼창이 쏟아졌다. “그대의 진짜 사랑에 / 감사로 꽉 찬 이 노랜 / 온전히 나를 서게 한 / 그댈 향한 내 인사.” 40년 음악 인생을 온전히 서게 한 팬들의 목소리가 역으로 그를 환송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무대는 그의 음악적 생애를 망라하는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였다. ‘내가 견뎌온 날들’과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묵직하게 포문을 연 그는, 특유의 짙은 호소력으로 ‘위로’와 ‘비상’을 열창하며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전주가 흐르는 순간부터 객석의 탄성을 자아낸 ‘고해’와 ‘너를 위해’의 절창은 예순이 넘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지난 1월 케이스포돔 공연과 비교해 세트리스트의 뼈대는 앙코르 무대에 ‘톰 캣(Tom Kat)’이 더해진 것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무대의 농도는 비할 바 없이 짙었다. ‘이 밤이 지나면’과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울려 퍼질 때, 팬들은 스마트폰 플래시를 흔들며 록의 전설과 뜨겁게 호흡했다. 똑같은 서사라도 ‘마지막’이라는 감각이 부여될 때 그 시간은 완전히 새롭게 쓰인다. 물리적인 곡의 추가보다 감정의 밀도가 더해진, 결코 전과 같을 수 없는 단단하고 경건한 무대였다.

이러한 폭발적인 무대 장악력은 세대를 초월한 관객들을 하나로 묶었다. 실제 예매처 놀(nol) 티켓의 연령별 예매율 통계에 따르면 이번 서울 앙코르 공연 예매율은 30대 28.1%, 40대 25.2%, 50대 24%, 20대 12.9% 등 전 연령대에서 고른 분포를 보였다. 3대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는 후기가 많이 나올 만큼, 전설의 음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인 수치로 증명한 셈이다.
1986년 록 밴드 시나위의 보컬로 등장해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던 청년은, 1991년 솔로 전향 후 숱한 명곡을 쏟아내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의 40년 여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현실과 음악 사이의 깊은 간극, 홀로 감내해야 했던 상처들로 인해 긴 침묵 속으로 내려가야 했던 숱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했다. 그럼에도 상실과 아픔의 심연 속에서 그는 늘 팬들의 사랑에 기대어 다시 마이크 앞으로 돌아왔다. 화처럼 끓어오르던 록 스타는, 겹겹이 쌓인 굳은살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타인의 삶을 껴안는 진정한 거장으로 성숙해 갔다.

이번 투어를 끝으로 한 임재범의 은퇴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나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처럼 여든이 넘어서도 현역으로 투어를 도는 거장들을 떠올리면 일견 아쉬움이 남을 법하다. 아직 그의 고유한 음색은 강력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순간에 미련 없이 무대를 떠나는 선택이야말로 임재범 그 자신을 꼭 닮았다. 과한 욕심 없이 박수칠 때 스스로 걸어 나오는 담백함. 이는 음악과 팬들을 향한 지극한 윤리이자 존경심의 발로다. 마지막 무대도 담백했다. 서울 앙코르 공연 첫 날 무대를 본 배우 천우희는 소셜 미디어에 “전설”이라는 글자만 남겼다.
상처와 위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공존했던 그의 서사는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결국 ‘사람’으로 수렴됐다. 세월의 덮임과 깎임을 거쳐, 타인에게 위로를 건네고 스스로 치유받는 진짜 어른이 된 그다. 모든 에너지를 불사르고 평범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마침표다. ‘나는 임재범이다’라는 묵직한 자각으로 이어온 기나긴 여정은, 텅 빈 무대를 꽉 채운 눈부신 ‘인사’로 대중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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