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LUCY), 산문성의 바다에 띄운 완결된 詩…기어이 도달한 ‘순수의 기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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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세상의 소란스러운 속도전이 닿지 않는 곳, 바이올린 선율로 직조한 숲과 포근한 앰비언스 사운드가 빚어낸 고유한 영토가 솟아올랐다. 시간의 풍화 앞에서도 기어이 ‘순수’를 구출해 내는 네 청춘의 음악은 획일화된 뭍의 산문성에 저항하는 완결된 시(詩)이자, 그 자체로 눈부신 ‘섬’이다.

2021년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조심스레 첫 닻을 올렸던 밴드 ‘루시(LUCY)’의 항해가 마침내 국내 콘서트업계의 성지, 케이스포돔(KSPO DOME)에 가닿았다. 아홉 번의 단독 콘서트를 거치며 한 계단씩 단단하게 일궈낸 ‘아일랜드(ISLAND)’. 16~17일 양일간 2만여 명의 관객은 이들이 세공한 거대한 긍정의 기슭으로 기꺼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섬을 고립과 단절의 동의어로 읽어왔으나, 루시가 직조해 낸 밴드 사운드는 섬의 철학을 심층적 연대로 치환했다. 17일 오후 흩어졌던 네 명의 청춘은 서로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대상의 고유함을 존중하는 ‘거리의 윤리’를 연주했다. 그 윤리 안에서 피어난 ‘발아’와 ‘개화(Flowering)’는 얄팍하고 소란스러운 접속이 만연한 시대에 깊고 단단한 뿌리의 얽힘을 현현시켰다.

멤버들의 악기는 이 철학적 성소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공연을 할 때마다 성장하고 있다’며 팀의 궤도를 묵직하게 이끄는 조원상의 베이스 위로, 신예찬의 바이올린이 ‘놀이’와 ‘아지랑이’를 넘나들며 정형화된 밴드 문법을 깬 눈부신 은유로 비상했다. 최상엽의 서정적인 기타와 목소리는 차가운 바닷바람마저 데우는 온기가 돼 ‘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 ‘아니 근데 진짜’의 서사를 엮어냈다.

무엇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신광일의 합류는 밴드의 완전한 복원을 의미했다. 그가 드럼 무빙 스테이지를 타고 허공을 유영하며 폭발적인 리듬을 쏟아낼 때, 비로소 흩어졌던 꽃잎들이 궤도를 찾고 빛으로 물들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최근작 ‘전체관람가’부터 ‘맞네’, 그리고 앙코르곡 ‘낙화’, ‘플레어(Flare)’까지 무려 30곡에 가까운 노래들이 쏟아졌다. 파도에 깎이고 씻기면서도 기어이 자신의 형태를 지켜내는 저 단단한 고유함. 데뷔 6년, 루시가 도달한 케이스포돔은 섣부른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었다. 과잉 연결의 시대에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우며, 바다가 품은 가장 투명한 긍정을 노래하는 영토였다. ‘동이 틀 때’까지 기어이 동심을 지켜내는 네 명의 소년들이 서 있는 곳, 그곳은 지금 한국 밴드 신(scene)에서 가장 굳건한 섬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517_000363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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