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부산=뉴시스] 이수지 한이재 기자 = 한국은 처음 개최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부산선언’을 통해 ‘협력’을 세계유산 보전의 새로운 전략목표로 제시하며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한국은 이제 그 원칙을 종묘를 비롯한 국내 세계유산 보존에서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번 위원회는 단순히 세계유산을 새로 등재하는 회의를 넘어 기후변화와 무력분쟁, 도시개발 등 복합적인 위협 속에서 세계유산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논의한 자리였다. ‘얼마나 많이 등재하느냐’보다 ‘등재된 유산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로 세계유산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한 회의라는 평가다.

◆부산선언으로 ‘협력(6C)’시대 열어…세계유산 보전 새 방향 제시
이번 위원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 주도로 채택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선언(Busan Declaration on World Heritage)’이다.
부산선언은 기존 세계유산협약의 5대 전략목표인 신뢰성(Credibility), 보존(Conservation), 역량강화(Capacity-building), 소통(Communication), 공동체(Communities)에 ‘협력(Collaboration)’을 새로운 전략목표로 추가하며 이른바 ‘6C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는 기후변화와 전쟁, 개발 압력, 디지털 환경 변화 등 어느 한 국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협에 맞서 국제사회가 협력을 세계유산 보전의 핵심 원칙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부산선언은 또 세계유산 분야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의 활용과 책임 있는 관리 필요성을 공식 의제로 담아 미래 세대의 보전 방향도 제시했다.

◆ 황해 갯벌 부산선언…’협력’ 첫 실행으로 이어져
부산선언이 세계유산 보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그 첫 실행은 ‘황해 갯벌 및 연안 습지 보전을 위한 부산선언’이었다.
‘한국의 갯벌’ 확대 등재를 계기로 채택된 이 선언은 황해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한국과 중국은 물론 북한의 잠정목록에 오른 연안 습지까지 협력 대상으로 제시했다.
참여 기관들은 세계유산인 ‘한국의 갯벌’과 ‘중국 황해-보하이만 연안 철새보호구역’을 중심으로 공동 연구와 생태 모니터링, 데이터 공유, 관리 경험 교류를 추진하기로 했으며, 12개월 안에 첫 기술조정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위원회가 새 전략목표로 채택한 ‘협력’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정책과 행동으로 이어진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등재보다 보존…세계유산 정책도 달라졌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한국의 갯벌’ 2단계 확대 등재를 비롯해 총 25건의 신규 세계유산이 탄생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은 등재 자체보다 보존과 관리에 쏠렸다.
국가유산청 세계유산분과 국가유산위원인 김충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번 위원회는 신규 등재를 넘어 세계유산의 보존·관리와 제도 운영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한 자리였다”며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축제를 넘어 보존과 관리의 핵심 의사결정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후변화와 재난 대응, 지역사회 참여, 유산영향평가(HIA), 역량 강화 등 세계유산이 직면한 현안이 폭넓게 논의됐고, 아프리카와 태평양 도서국의 목소리도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 국제사회에선 ‘협력’…국내에선 종묘가 첫 시험대
국제사회에 새로운 보전 전략을 제시한 한국은 이제 국내 세계유산에서 이를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묘와 세운4구역 재개발 문제다.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은 부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종묘는 한국과 한국 문화, 한국인의 역사 그 자체인 소중한 보석”이라며 “개발이 추진된다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반드시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력한 법·제도적 보호 장치와 함께 개발이 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미래 세대가 ‘예전에 저기 종묘가 있었지’라고 말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도 “현재는 세계유산센터와 자문기구가 우리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것이 논의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향후 개발 계획과 HIA 결과에 따라 다시 위원회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위원회를 계기로 부산포럼 정례화와 핵심지질유산지역(KGA) 사업 등 부산선언의 후속 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국제사회에 세계유산 보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한국이 이제 종묘를 비롯한 국내 세계유산에서 그 원칙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가 부산선언 이후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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