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구름을 그리던 화가의 시선이 마음으로 향했다.
자연과 시간, 보이지 않는 현상을 탐구해온 작가 강운(60)이 이번에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색으로 풀어낸다.
사비나미술관은 오는 10월11일까지 강운 개인전 ‘색으로 태어나다-Born to be Color’를 개최한다.
강운의 회화는 자연에서 출발했다. 초기 ‘구름’ 연작에서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포착했다. 이후 바람과 물,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로 관심을 넓혔다.
‘물 위를 긋다’에서는 아크릴판 위에 화선지를 올리고 물로 선을 그은 뒤 습도와 온도, 시간에 따라 형상이 만들어지도록 했다. ‘공기와 꿈’에서는 공기와 시간 속에서 이미지가 생성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자연을 향했던 시선은 점차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했다.
최근 이어온 ‘마음산책’ 연작에서는 기억과 감정, 마음의 움직임을 색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이어온 ‘구름에서 마음으로’의 여정을 색채 체계와 회화적 방법론, 공간 설치로 확장해 보여준다.
전시의 중심에는 강운이 구축한 ‘강운 색상환’이 있다.
작가는 산문을 쓰며 포착한 미세한 감정을 색으로 옮긴다. 문장은 캔버스에 스크래치로 새겨지고 그 위에 여러 겹의 투명한 색이 쌓인다. 글자는 색 아래로 잠기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어가 색이 되고, 색은 다시 회화가 된다.
‘마음산책’ 신작에는 5단계 색채 레이어링(Color Layering)도 적용했다. 캔버스를 말리고 90도씩 돌려가며 투명하고 채도 높은 색을 반복해 겹쳐 올리는 방식이다.
먼저 그은 붓질과 문장은 새로운 색 아래로 사라지는 듯하다가 다시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밝음에서 어둠으로, 다시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어지는 색의 층을 통해 감정이 생겨나고 응축됐다가 다시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어둠을 지워 빛을 만드는 방식도 택하지 않았다.
흰색 물감을 사용해 화면을 밝히기보다 투명한 색을 여러 겹 쌓아 화면 안쪽에서 빛이 배어나오도록 했다. 신작에 사용한 금분은 관람객의 위치와 자연광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진다.
회화는 캔버스를 넘어 공간으로도 확장됐다.

2층 전시장에 설치한 ‘마음산책-유기적 삼각형’은 크기가 다른 캔버스를 사비나미술관의 건축과 결합한 대형 설치 작품이다.
미술관의 삼각형 모서리와 서로 다른 층고, 천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관람객이 움직이면서 달라지는 시선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벽에 걸린 개별 회화를 건축과 빛, 사람의 움직임이 결합한 공간적 회화로 확장한 것이다.
1966년생인 강운은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작업을 이어왔다. 구름과 하늘에서 출발해 바람과 물, 공기 등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작용을 탐구했고, 최근에는 ‘마음산책’ 연작을 통해 내면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다.
2022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운운하다’, 2023년에는 ‘구름에서 마음으로 가는 여정’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2023년 제1회 호반미술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전남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광주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자연 형상에서 출발한 그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기를 거쳐 마침내 인간 내면의 감정과 기억으로 깊어졌다”며 “언어와 색, 물질과 공간을 하나의 생성 과정으로 연결함으로써 평면 회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색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마음속 기억과 감정이 여러 번의 덧칠과 기다림을 거쳐 색과 빛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뜻한다.
색 아래 문장과 붓질이 흔적으로 남듯, 지나온 기억과 감정도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색의 층을 만든다. 강운은 그 겹쳐진 마음의 시간을 ‘색’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10월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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