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관은 떠나고 대만관은 각인됐다…광주비엔날레 ‘회색지대’의 역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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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중국관은 떠났고 대만관은 남았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불거진 ‘대만 파빌리온’ 명칭 논란은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정치적 압박과 검열 논란에 국내외 예술인들의 연대가 이어졌고, 중국관은 결국 철수했다.

광주비엔날레는 본전시와 별도로 국가·기관이 참여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국립대만미술관(NTMoFA)은 재단과 기관관 자격으로 참여 협약을 맺었다. 재단은 이를 근거로 공식 명칭에 기관명인 ‘NTMoFA’를 사용했다.

그러나 대만 측은 실무 협의 과정에서 사용해온 ‘대만관(Taiwan Pavilion)’ 명칭이 NTMoFA로 변경된 데 문제를 제기했다. 국내외 예술계에서도 정치적 검열이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논의 끝에 ‘대만관’ 명칭 사용을 승인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반발했고, 중국관 참여 작가들이 작품 설치를 중단하고 철수하면서 광주비엔날레는 양안 갈등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반면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만관은 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예정대로 개막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에는 16개 국가관과 11개 기관이 참여해 총 28개 파빌리온을 선보인다. 그 가운데 개막 전부터 가장 뜨거운 이름은 ‘대만관’이 됐다.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오히려 대만의 존재를 국내외 미술계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셈이다.

더욱 절묘한 것은 전시 내용이다.

대만관의 제목은 ‘인스턴스 던전: 회색 지대(Instance Dungeons: Gray Zone)’. 대만이 놓인 지정학적 ‘회색지대’를 냉전과 백색테러의 기억, AI와 감시 기술, 정보전과 가짜정보를 통해 들여다본다.

“우리는 흑과 백, 진실과 허구, 자유와 통제, 기술과 인간의 인식이라는 단순한 구분만으로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한 천광이 NTMoFA 관장은 “개인의 경험과 정치적 현실은 서로 다른 의식의 공간에서 겹쳐진다”며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 다른 시스템과 서사를 마주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의미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어 “준비 과정에서 대만관의 명칭이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각계의 성원 덕분에 결국 ‘대만관’이라는 이름으로 순조롭게 참가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정신을 품은 도시 광주에서 본래의 이름으로 전시하게 된 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전시가 말하는 ‘회색지대’가 전시장 밖에서 먼저 현실이 된 셈이다.

하지만 논란만으로 주목받기에는 전시 자체가 아깝다.

대만 작가 8팀이 참여한 전시는 AI와 게임, 영화, 아카이브, 인터랙티브 설치를 능숙하게 끌어들인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기술과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 뒤 질문을 던진다.

◆AI가 실제 군사기지를 게임 속 전쟁터로 오인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루안바이위안의 신작 ‘그라인딩_tw’다.

작가는 대만 냉전 시기의 군사시설과 전쟁 관련 온라인 아카이브, 폐허 기록과 사진 등을 생성형 AI에 입력했다.

그런데 AI 모델은 실제 전쟁 유적과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하프라이프’ 같은 1인칭 슈팅게임의 이미지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AI가 실제 전쟁의 흔적을 게임 속 전쟁터로 오인한 것이다.

작가는 그 오류를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AI가 현실과 가상을 뒤섞으며 재구성한 대만 군사기지는 출구 없는 ‘무한 던전’으로 변한다.

정세위의 ‘빛의 추적(Traced)’에서는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 AI와 컴퓨터 비전, 실시간 인체 추적 기술을 이용해 관람객이 움직이는 곳마다 스포트라이트가 따라붙는다.

감시가 ‘목격’이라는 시적 행위로 바뀌는 동시에 섬뜩한 질문을 남긴다.

기계가 우리 대신 ‘본다면’ 인간의 판단은 어디에 남는가.

◆“무엇이 진짜인가”…AI 시대의 정보와 공포
리이판의 ‘important_message.mp4’는 더욱 직접적이다.

“무엇이 진짜인가?”

영화 ‘매트릭스’의 질문에서 출발해 온라인 음모론과 가짜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를 파고든다. 정보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불러일으킨 공포와 욕망까지 가짜라고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쑤후이위의 ‘우주 전사들과 디지그레이브’는 1980년대 대만에서 일본 특촬물을 모방해 제작했던 SF 드라마를 AI와 영상으로 다시 호출한다. 동아시아의 집단주의와 대중매체, 가부장제의 기억을 뒤섞는다.

장원쉬안은 ‘데이터 용량 초과’를 통해 한국전쟁과 대만 백색테러의 기억을 정보 과부하의 문제와 연결한다.

쉬저위와 천완인의 ‘작은 집 a’는 대만이 과거 핵무기 원료를 비밀리에 제조했던 시설의 기억을 추적한다.

전시에는 정세위, 루안바이위안, 쉬저위·천완인, 쑤후이위, 리이판, 린위량, 정팅팅, 장원쉬안 등 8팀이 참여했다. 천상원과 린샤오위가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다.

◆지우려던 이름, 오히려 선명해졌다
대만관은 이번 논란을 피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전시가 제기해온 질문과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기묘하게 포개진다.

국가와 국경, 냉전과 지정학, 보이지 않는 통제와 개인의 선택을 다룬 전시가 정작 자신의 이름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 한가운데 놓였다.

그러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검열 논란과 예술인들의 연대, 중국관 철수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대만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을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가장 선명한 이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논란이 대만관을 보게 했다면, 이제 관객을 붙잡는 것은 작품이다. 정치적 논란을 걷어내고 봐도 전시는 힘이 있다.

전시는 오는 11월15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905_0003777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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