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소변기 하나로 미술사를 뒤집은 마르셀 뒤샹 (1887~1968). 그러나 그의 혁명은 ‘레디메이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책과 잡지, 포스터, 초대장, 사진과 엽서까지. 작품을 복제하고 출판하고 유통하는 방식 자체를 예술로 확장한 뒤샹의 또 다른 세계가 서울에 펼쳐졌다.
마이어리거울프 서울은 11월 5일까지 ‘마르셀 뒤샹: 파리지앵 컬렉션(Marcel Duchamp: A Parisian Collection)’을 개최한다. 파리의 한 컬렉터가 약 30년에 걸쳐 수집한 뒤샹 관련 작품과 자료 약 25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에디션(edition)’이다. 일상의 기성품을 예술로 선언한 뒤샹은 작품의 유일성과 작가의 손, 저자성이라는 전통적인 미술의 관념을 흔들었다. 동시에 복제와 반복, 출판과 유통을 적극 활용하며 하나의 작품과 아이디어가 다른 형태와 맥락으로 이동하는 과정까지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들였다.
전시장에는 뒤샹이 직접 디자인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서적과 카탈로그, 포스터, 초대장, 에페메라, 콜로타이프 등이 나왔다.
1938년 제작한 ‘커피 분쇄기’와 1937년 ‘체스를 두는 사람들’은 뒤샹이 자신의 작품을 축소해 휴대 가능한 미술관처럼 만든 ‘여행가방 속 상자(La Boîte-en-valise)’에 수록하기 위해 제작한 재현작이다. ‘체스를 두는 사람들’ 뒷면에는 라벨 인쇄를 위해 출판사에 전달하려고 뒤샹이 붙인 자필 메모도 남아 있다.

1945년 마르셀 뒤샹에게 헌정된 잡지 ‘뷰, 더 모던 매거진’ 뒤샹 특집호도 눈길을 끈다. 100부 한정으로 제작된 디럭스 에디션 가운데 9번이다. 뒤샹이 직접 그린 표지와 함께 조셉 코넬,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브르통, 미나 로이, 만 레이 등 18인의 자필 서명이 담겼다.
뒤샹과 만 레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도 나왔다. 만 레이가 촬영한 1921년 ‘삭발’과 ‘먼지 배양’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1947년 국제초현실주의전 카탈로그 ‘1947년의 초현실주의’는 뒤샹 특유의 도발을 압축한다. 엔리코 도나티와 함께 만든 여성의 가슴 형태를 표지에 붙이고 ‘제발 만지시오(Prière de toucher)’라고 적었다. 미술 작품 앞에서 눈으로만 감상하라는 관습까지 뒤집은 작업이다.

188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뒤샹은 1913년 뉴욕 아모리 쇼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출품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전거 바퀴와 눈삽, 소변기 등 일상의 기성품을 예술로 제시하며 예술적 가치의 근거를 작가의 제작 기술에서 ‘선택’과 ‘지정’의 행위로 옮겼다.
1920년대부터는 여성 페르소나 ‘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를 내세워 예술가의 정체성과 저자성에도 질문을 던졌다. 회화와 조각을 넘어 출판과 편집, 전시 기획, 언어와 이미지까지 작업의 영역으로 확장한 그의 실천은 다다와 초현실주의에서 팝아트와 개념미술까지 20세기 미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대표작 몇 점으로 굳어진 ‘미술사의 뒤샹’ 대신 이미지와 텍스트, 출판물과 전시를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고 이동했던 뒤샹을 보여준다.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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