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버틴 오로라’·’부상 이겨낸 라일락’…발레리나 전여진·김채리[문화人터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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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의 주역을 하기까지 13년이나 기다렸네요.” (오로라 공주 역 전여진)

“걸어갈 때에도 동작을 할 때에도 라일락 요정과 같은 아우라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라일락 요정 역 김채리)

고전 발레 교과서로 불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역 ‘오로라 공주’를 맡은 전여진(32·솔리스트)과 공주를 지키는 수호신 ‘라일락 요정’ 역의 김채리(35·드미 솔리스트)가 23일 서울 마곡동 유니버설발레단 사무실에서 열린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올해 솔리스트로 승급한 전여진은 지난 8월 ‘백조의 호수’의 주역 오데트(백조)와 오딜(흑조) 역을 맡은 데 이어, 오는 10월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역 오로라 공주로 무대에 오른다. 2년 전 순회공연에서 라일락 요정 역이었던 그는 이번에 첫 주역으로서 서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로라 역은 이번에 처음 해보는데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춘천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오로라 역을 했는데 오히려 백조의 호수보다 나았습니다.”

지난 2012년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일찌감치 오로라 공주 역을 맡았던 김채리는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라일락 요정 역에 도전한다. “라일락 요정은 포스가 있어야 하고 극을 끌어가면서 선한 여왕의 분위기를 내야 하니까 부담감이 크다”며 “오로라 공주를 했을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웃었다.

전여진과 김채리는 서로 ‘언니’·’동생’이라고 부르며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관계”, “얼굴만 봐도 힘이 나고 그냥 웃게 된다”며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다. 전여진이 “연습을 할 때 채리 언니에게 ‘잘한다’ 혹은 ‘못한다’는 얘기를 직설적으로 한다”고 말하자 김채리는 “서로에 대해서 잘 알다보니 연습에 보다 집중해서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 못지않게 이번 무대에서 파트너들과 빚어낼 앙상블도 기대를 모은다.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이승민에 대해 전여진은 “마치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리드해 주는 파트너”라며 “서로 격의 없이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 무대에서 마음껏 연기할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김채리 역시 “승민이는 본인이 스스로 박자나 동선을 철저히 챙겨서 파트너가 불필요한 힘을 안 쓰게 해주는 믿음직한 파트너”라고 전했다.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받쳐주는 두 무용수는 학교 졸업 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하고 이후 휴식기를 거쳐 재입단했다는 묘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전여진은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거쳐 2012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하지만 발레단에서 전막 주역을 맡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며 자신을 ‘대기만성형’ 무용수라고 강조했다.

“군무하다가 잘린 적도 있지만, 버티는 것을 잘 하는 것 같아요. 화가 나거나 슬퍼도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깐 어느덧 이렇게 주역을 맡게 되고, 최근엔 기량이 크게 향상됐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빛을 본 전여진은 “과거엔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나만의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제는 무대를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크다”고 털어놨다.

이어 “잘한다고 자만하는 순간 독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멈춰 있지 않고 조금씩 발전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반면 김채리는 입단 초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용수다. 2007년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 3위를 차지한 그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의 제안으로 2009년 입단했다. 하지만 이후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2013년 ‘백조의 호수’ 지방 공연 리허설 중 오른쪽 무릎 전방 및 내측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당시 많은 무대에 서며 지쳐있던 김채리는 “다치고 나서 든 생각이 ‘드디어 쉴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부상당한 이후 “다 내려놓았다. 은퇴할 때까지 목표는 행복하게 춤을 추는 것”이라며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2년여간 발레를 완전히 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김채리는 2017년 홍콩발레단에 입단해 활동하다 2020년 유니버설발레단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부모님의 바람과 유니버설발레단 측의 제안이 맞물린 결과였다.

예술적 영감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전여진은 “강한 멘탈을 갖고 자기 일에 열정적인 배우 김고은의 일상과 인터뷰를 보며 영감을 받는다”고 했으며, 무용수 중에서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서희를 꼽았다.

김채리는 “제 인생의 길잡이는 아버지”라면서 “무용 평론가를 하셔도 될 만큼 예리한 시선으로 피드백을 해주시는데, 아버지가 주신 선택지들이 늘 옳았다”며 깊은 신뢰를 보였다.

향후 도전하고 싶은 배역에 대해 김채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처럼 춤과 연기가 어우러지는 드라마 발레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여진은 “‘전여진의 지젤’, ‘전여진의 오로라’처럼 저만의 색이 뚜렷한 배역을 만들고 싶다”며 “유니버설발레단의 훌륭한 레퍼토리인 ‘심청’과 ‘춘향’ 무대에도 꼭 주역으로 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923_000380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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