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 삶의 퍼즐 맞춘 ‘주크박스 뮤지컬’ 콘서트…’영감의 샘터’가 ‘구원의 쉼터’ 됐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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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시간은 언제나 균질하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예술은 흩어진 생의 순간들을 단 몇 시간 안으로 응축해 영원의 무늬를 새긴다.

남매 듀오 ‘악뮤(AKMU)'(이찬혁·이수현)가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에서 펼친 전국투어 콘서트 ‘소문의 낙원’ 서울 공연 마지막 날 무대는, 한 편의 거대한 이머시브 주크박스 뮤지컬이자 삶이라는 모순을 긍정하는 숭고한 의식이었다. 이들의 노래들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극처럼 이어지고 연결됐다.

12년간 몸담았던 대형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독립 레이블 ‘영감의 샘터’를 설립한 뒤 지난 4월 발표한 정규 4집 ‘개화(開花)’로 다시 활짝 핀 이들은, 서른 살 안팎의 나이에 도달해 길어 올린 가장 단단하고 투명한 세계의 증명이기도 했다.

◆몽골의 황혼과 사막의 텐트…’악카데미’가 무대의 풍경이 되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통상적인 K-팝 콘서트의 문법은 해체됐다. 360도 원형 무대는 어린 시절 두 남매가 뛰놀았을 법한 몽골의 초원이자 광활한 사막을 연상시켰다. 공연 시작 전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실제 풀벌레 소리와 마임·묘기 연기자들의 사전 공연은 관객을 단숨에 낯선 나그네의 시간대로 이끌었다.

특히 스탠딩석은 무대 바깥의 관람 구역에 머물지 않고 원형 무대 안쪽으로 깊숙이 편입됐다. 아티스트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 구조 속에서, 팬덤 ‘악카데미(AKKADEMY)’를 비롯한 전 좌석 관객이 착용한 중앙제어 손목 밴드의 불빛은 어둠 속 반딧불이가 됐다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되며 관객 스스로를 무대 세트이자 풍경의 일부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압권은 오프닝이었다. 여명을 알리는 기상 나팔 같은 트럼펫 소리와 함께, 원경의 스크린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오던 자동차 영상이 무대 세트와 절묘하게 맞물리더니 실제 픽업트럭이 무대 위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흔한 이동식 무대 장치(토롯코)가 아닌 실물 차량에서 내려 버스킹하듯 첫 곡 ‘봄 색깔’을 부르는 순간, 거대한 돔 공연장은 흙먼지 날리는 초원의 길목이자 실재하는 낙원으로 치환됐다.

◆새벽에서 밤까지…하루의 궤적에 포갠 12년의 생애사

이날 27곡의 본공연과 앙코르로 이어진 약 30곡의 세트리스트는 정교하게 직조된 ‘인간의 하루’였다. 여명과 아침(봄 색깔·벌레를 내고·옳은 사람·우아한 아침 식사·햇빛 블레스 유(bleSS you))에서 깨어난 화자는, 정오의 눈부신 활력과 유희(소문의 낙원·물 만난 물고기·낙하·라면인건가·러브 리(Love Lee)·200%·후라이의 꿈) 속에서 세상과 부딪힌다.

‘영감의 샘터’ 수장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샘터장’ 이찬혁의 위트와 지휘 아래, 화려한 브라스 섹션과 구역별 댄서들이 관객 모두를 춤추게 만든 ‘소문의 낙원’은 축제의 정점이었다. 무대 위 주인공을 넘어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연출 속에서 에너지는 맹렬히 타올랐고, 거창한 비행 대신 바닥에 눕기를 긍정(이수현은 실제 바닥에 누웠다)하는 ‘후라이의 꿈’의 나른한 오후로 숨을 골랐다.

이어지는 황혼(텐트(Tent)·어린부부·고래·뱃노래·프리덤(FREEDOM)·에일리언(ALIEN)·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멸종위기사랑)은 고독한 항해와 실존적 이질감을 응시하는 시간대였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억눌린 결핍과 비탄은 깊은 밤(다이노소어(DINOSAUR)·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난민들의 축제·에베레스트(EVEREST)·오랜 날 오랜 밤·얼룩)의 심연 속으로 침잠했다.

이 24시간의 순환은 곧 악뮤의 생애사이기도 했다. 2012년 SBS TV ‘K팝 스타 시즌2’의 악동뮤지션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순정한 유년기를 지나, 치열했던 성장통과 슬럼프를 건너, 30대를 목전에 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12년이 고스란히 겹쳐졌다.

공연 시작 1시간 만에 마이크를 잡은 이수현이 “데뷔한 지 12년 차인데 악뮤도 2년 뒤면 전원 30대 그룹이 된다. 그전에 풋풋한 20대일 때 남은 체력을 다 끌어모아 열심히 뛰어다니려고 한다”고 밝히자 객석의 악카데미들 사이에서 탄식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온 대목은, 흘러가는 젊음에 대한 애틋함과 성숙한 자각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마주 본 두 남매…사적인 구원이 빚어낸 보편적 연대

공연의 감정적 파고가 가장 높게 일렁인 순간은 단연 정규 4집 ‘개화’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그간 악뮤의 무대에서 두 남매는 주로 서로 무대 공간을 나누어 쓰거나 객석을 향해 나란히 시선을 뒀는데 이 곡이 연주되는 순간, 두 사람은 무대 한가운데서 비로소 온전히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오랜 슬럼프와 은둔이라는 깊은 어둠에 갇혀 있던 동생을 살려내기 위해 오빠 이찬혁이 써 내려갔던 치유의 문장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 / 끼우고 나면 다 퍼즐이 될 거야”는 이 두 사람의 눈빛 사이에서 맑게 공명했다.

상처를 도려내야 할 오답으로 보지 않고 삶의 고유한 조각으로 껴안는 이 ‘퍼즐의 미학’은, 가장 사적인 혈육의 고해성사에서 출발해 객석 1만 명의 시린 상흔을 어루만지는 공적 구원으로 승화했다. 눈물을 삼키며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의 모습은 화려한 무대 특수효과보다 더 묵직하게 돔 공연장을 적셨다.

이어 ‘난민들의 축제’에 이르러 무대는 거대한 캠프파이어의 장으로 변모했다. 삶이라는 막막한 사막을 건너온 나그네들이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손뼉을 치듯, 아티스트와 관객은 세상의 난민이자 동료로서 연대의 온기를 나눴다.

앙코르로 배치된 ‘전쟁터’와 ‘시간을 갖자’는 이 긴 하루를 살아낸 이들에게 건네는 최후의 배려였다. 치열한 생존의 싸움터를 통과한 존재들에게 다시 뛸 것을 다그치는 대신, 가만히 숨을 고르고 다음 새벽을 기다리자며 침묵의 유예를 건네는 안식.

음악 악(樂)에 아주 미세한 것을 뜻하는 마이크로(μ)가 결합된 ‘악뮤’라는 이름처럼, 이들은 가장 작고 일상적인 감정의 결을 들여다보며 삶 전체를 긍정해 냈다. “우리와 함께하는 밤이 여러분의 삶에 예쁜 퍼즐 조각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던 약속은 이미 충만하게 완성돼 있었다.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열린 이번 서울 공연은 회당 1만 명씩 총 3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화려하게 전국투어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악뮤는 오는 11월7일 강릉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부산, 광주로 전국투어의 여정을 이어간다. 삶이라는 거친 계절 속에서 흐리고 시린 조각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영감의 샘터’가 세워 올린 이 다정한 텐트는 당분간 가장 포근하고 ‘구원의 쉼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1010_00038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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