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뉴시스]김주희 기자 = “이 무대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아일랜드처럼 형성됐거든요.”
미국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 연극 ‘벚꽃동산’의 유리집이 들어선다. 이전 공연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대다.
작품 무대 디자인을 맡은 사울 킴(32)은 뉴욕 공연을 위해 새롭게 세운 ‘벚꽃동산’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벚꽃동산’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동명 희곡을 사이먼 스톤 연출이 한국을 배경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전도연과 박해수가 주연으로 나서 2024년 6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초연한 뒤 홍콩과 싱가포르,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관객을 만났다. 16일(현지시간)부터 26일까지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이어지는 뉴욕 공연은 해외 투어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둔 15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만난 사울 킴은 공연장의 특색에 맞춰 이번 무대를 손봤다고 설명했다. 서울부터 해외 투어까지 무대에 변화를 준 건 뉴욕이 처음이다.
그는 “사이먼 스톤 감독님이 역사가 깊은 극장의 공간 자체를 많이 노출시키고 싶어했다”며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뉴욕 공연이 열리는 파크 애비뉴 아모리의 웨이드 톰슨 드릴 홀은 19세기 군사 훈련장으로 지어진 공간이다. 일반적인 극장과 달리 무대와 객석이 고정돼 있지 않아 작품에 따라 이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
뉴욕에서는 기존 무대에서 배경을 담당하던 하얀색의 벽과 바닥을 걷어내고, 이를 통해 공연장의 공간 자체가 드러나도록 했다. 객석의 시야를 고려해 유리집을 받치는 무대는 이전보다 조금 높였다.
사울 킴은 “처음에는 벽이 사라지면 의도했던 그림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이 무대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아일랜드처럼 형성돼 전체가 흰색으로 뒤덮인 게 아니어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그림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특히 극장의 넓은 공간은 유리집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는 “그 안에 작품이 하나의 오브제처럼 놓여 있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현재 건축과 무대, 가구,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울 킴은 당초 건축 디자이너로 활동해왔다. 그에게 다른 영역의 문을 열어준 곳이 ‘벚꽃동산’이다. 그는 사이먼 스톤 연출의 제안을 받아 처음 공연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활동 영역을 본격적으로 넓히게 됐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완성한 독특한 무대는 초연 개막 후부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무대 위에 세운 비대칭의 투명한 유리집은 작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여기에는 작품이 그리는 계급과 세대의 변화가 담겼다. 사울 킴은 “집은 안식처의 느낌도 있지만 중간에 지붕이 끊기며 낭떠러지가 된다”며 “한쪽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공간이라면 반대쪽은 불안감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 점이 무대에서 표현된다”고 짚었다.
법규가 정해져 있는 건축과 달리 무대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했다. 난간이 없는 지붕이나 높이가 달라지는 계단 등 실제 건축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요소가 무대에서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됐다.
반면 건축가의 시선으로는 이 집을 보며 “‘배수관이 어디 있지, 물이 어디로 갈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사울 킴은 “집은 방수, 단열이 굉장히 중요하다. 무대에서는 그런 디자인의 한계가 없어 더 자유로웠다”며 웃음 지었다.

건축과 무대의 또 다른 점은 지속성이다. 오랫동안 남는 건축과 달리 공연이 끝나면 무대는 사라진다. 그러나 사울 킴은 허물어지는 무대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다고 했다.
그는 “(공연에서도) 도면과 아이디어는 영원하다. 그게 기록으로 잘 남으면 아쉽진 않다”며 “오히려 건축은 개인 소유일 때가 많아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는 걸 보지 못한다. 무대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좋은 구경도 하고 뿌듯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건축주와 시공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건축과 달리 무대에서는 창작진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함께 움직인다는 점도 그에게는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공연은 원하는 이미지를 위해 같이 달리는 것 같아요. 정말 즐겁게 작업했죠. 기술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어요. 앞으로도 무대 작업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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