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해진 몸, 단절된 사회…김곡의 ‘모양 없는 육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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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한이재 기자 = “오늘날 뱃살보다 긴급한 존재론적 문제는 없다.”(7쪽)

영화감독 김곡이 신작 ‘모양 없는 육체'(고유서가)에서 던지는 문제 의식이다. 책은 몸을 출발점으로 현대사회를 읽어낸다. 성형부터 인터넷 방송, 포르노, 플랫폼 노동, 정치까지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설명한다. 저자가 제시한 개념은 ‘물렁함’이다.

저자가 말하는 ‘물렁함’은 단순히 살이나 육체의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모양이 없고 자유롭게 변형되는 상태, 쉽게 늘어나고 달라지는 성질을 가리킨다. 한때 단단한 규범과 질서로 유지되던 세계가 점점 물렁해지면서 여러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출발점은 몸이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몸을 수정하고 관리한다. 성형과 다이어트, 몸 만들기는 아름다움과 더 나은 몸을 향한 욕망이지만, 동시에 모든 몸을 불안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를 지속성보다 순간을 좇는 ‘신체편집증(somatoparnoia)’이라고 설명한다. 매 순간 몸은 부정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몸이 전시되는 문화는 인터넷 공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터넷 방송에서 BJ는 타인의 욕망을 대신 수행하는 육체가 된다. 저자는 고전 에로물이 ‘금기의 위반’을 내세웠다면, 오늘날 포르노는 연결된 육체만 남긴다고 말한다. 관계의 긴장이나 고통은 사라지고 소비되는 몸만 남는다는 것이다.

현실감각의 변화는 범죄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스토킹이나 가스라이팅, 온라인 성착취 같은 범죄를 저자는 ‘나르시시스트의 혐오 범죄’로 해석한다. 타자라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연결에 대한 욕망이 왜곡되게 나타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런 현상을 지난 세기의 ‘마조히즘’이 오늘날 ‘부드러운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읽는다.

‘물렁함’은 사회구조에서도 발견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바꾸도록 요구받는다. 플랫폼 노동이나 감정 노동은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능력을 노동의 조건으로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내부의 공항’과 연결 짓는다.

군중 역시 정체성을 상실하고 파동처럼 물렁해진다. 연대보다 동질성이 중요해지며, 인터넷 공간과 현실 구분조차 의미가 없어진다. 물렁해진 몸에 두뇌는 뿌리 내릴 곳을 잃고 주인 없는 생각과 욕망만 넘쳐난다. 몸도 정신도 주권이 소거된 현대인만 남는다.

정치 영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념이나 수치심도 사라진 자리에는 정치혐오와 망상만 남았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책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사랑’이다.

타자를 발견하고 세상과 부딪히는 경험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人間)이 ‘사람 사이’를 뜻하는 사실과도 맞닿아있다.

“몸이 공공재라면 삶이야말로 대중예술일 것이다.”(179쪽)
◎공감언론 뉴시스 nowone@newsis.com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306_0003536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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