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부=뉴시스]이수지 기자 = 부탄에서 열린 ‘제2회 국제 ESG 포럼’은 ESG를 연기(緣起) 와 불이(不二)의 관점에서 확장하려는 대한불교조계종의 해석과 실천 해법이 공유된 장이었다.
조계종은 지난 9~10일(현지시간) 부탄 팀부에서 열린 국제 ESG 포럼에서 ESG를 새로운 대안이나 대체 개념으로 제시하기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작동 중인 사회적 해법을 불교 사상으로 보완·확장하는 접근을 소개했다. ESG가 보다 지속가능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윤리적·관계적 토대를 불교의 사상에서 찾은 것이다. ESG는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약자로 기업과 기관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글로벌 기준이다. 이날 포럼에서 조계종은 ESG를 ‘관리의 지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관계의 문제’로 다시 사유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진우스님 “不二 관점으로 공존·공생 문명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총무원 사회국장 선일 스님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ESG를 제도와 지표의 문제로만 접근할 경우 마주할 수 있는 한계를 짚었다.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를 분리하지 않는 연기와 불이의 관점이 전제될 때, ESG 역시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우스님은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불이의 관점에서,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문명에서 공존과 공생의 문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존재는 서로의 조건이 돼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며 “이번 ESG 포럼을 통해 인류가 더불어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문화·학술·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우스님은 또 부탄이 추구해온 국민총행복(GNH) 철학을 언급하며 “자연 자원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을 통해 경제적 도약을 이루면서도 국민 행복의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는 부탄의 대담한 실험은 물질적 성장 중심의 발전 모델을 넘어선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국불교와 부탄의 드룩파 까규 전통이 자비와 공동체 정신이라는 공통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GNH 역시 불교적 인연법에 기반한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녹색 사찰, ESG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방식
전날 진우 스님이 연기와 자비를 ESG의 해법으로 제시했다면, 포럼 둘째 날은 불교의 수행 전통과 사찰 운영 방식이 ESG와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해인사 승가대 교수 원걸스님은 ‘불교 생태 철학과 한국 불교의 환경적 활동’을 주제로 기조 연설했다.
원걸스님이 제시한 ‘녹색 사찰(Eco-Temple)’ 모델은 발우공양과 절제된 소비, 채식과 공동체 생활, 자연과의 공존을 전제로 한 사찰 건축과 운영이 ESG의 환경(E)·사회(S)·지배구조(G) 요소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사찰을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실험되고 확산되는, 지역 기반 생태 거점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불교 수행을 ESG와 분리된 영역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ESG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제시한 접근이다.

◆국민총행복(GNH)을 국가 운영의 철학으로 삼은 부탄
ESG 국제포럼의 개최국인 부탄은 ‘국민총행복(GNH)’이라는 국가운영 철학을 통해 인간의 삶과 공동체, 자연을 통합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총행복은 단순한 정책 지표가 아니라, 무엇을 성장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기준이다.
김민경 한국부탄우호협회 회장은 “이번 포럼은 단순한 국제행사가 아니라 철학적 연속선상에 있는 자리”라면서 “부탄은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나라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쇼 케상 왕디 부탄 왕실 추밀원 부의장은 GNH 개념에 대해 “불교의 핵심은 자비 실천이며, 제4대 국왕이 이를 국가 발전 철학으로 구체화한 것이 국민총행복”이라고 설명했다.
GNH 개념을 구성하는 4가지 중요 요소로는 ▲전통 문화의 보존과 증진,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경제 발전, ▲환경 보호, ▲선한 거버넌스를 꼽았다.
그는 “GNH는 물질적 필요와 정신적 요구 사이의 균형, 즉 중도를 실천하기 위한 기준”이라며 “불교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국민총행복은 그 방향을 사회 제도 속에서 구현하는 방법론”이라고 덧붙였다.

◆ESG를 다시 묻다…함께 존재하는 법
이번 포럼은 ESG를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하기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작동해온 삶의 방식과 사상을 다시 불러내는 자리였다. 숫자와 지표로 환원되기 쉬운 ESG 담론에 연기와 불이라는 관계의 언어를 보태며,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제도 이전의 삶과 윤리의 차원으로 되돌려놓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부탄 팀부에서 열린 이 조용한 논의는, ESG가 무엇을 더 성취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계종 사회국장 선일 스님은 “ESG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작동 중인 해법인 만큼, 불교는 이를 평가하거나 대체하려 하기보다 어떻게 더 인간적이고 관계적인 방향으로 작동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 왔다”며 “이번 포럼은 그 문제의식을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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