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살면서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나요? 난 두 사람이나 있었어요. 재수가 좋았죠. 그런데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했지 뭐예요? 재수도 더럽게 없지.”
캔버스 앞에 앉은 노인의 독백으로 막이 오른다.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붓을 든 별난 여자’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올랐다.
지난달 21일 개막한 뮤지컬 ‘렘피카’는 실존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무대 위에서 강렬하게 펼쳐보인다.
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렘피카는 아르데코 양식의 초상화로 시대를 풍미한 화가다. 날카로운 선, 차가운 빛, 매혹적인 색채로 자신 만의 조형 언어를 완성한 그는 당대의 규범을 벗어난 파격적 신여성으로 주목받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삶의 기반을 잃은 렘피카든 파리로 망명하고, 생존을 위해 붓을 든다. 그러던 중 렘피카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라파엘라를 만나며 새로운 세계를 맞는다. 라파엘라를 뮤즈로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동시에 라파엘라와의 사랑도 깊어진다.
작품은 렘피카의 삶을 성공 서사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남편을 두고 라파엘라를 만나면서도, 상대에게는 “너를 지켜주고 싶다”며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렘피카의 모습은 욕망과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인물을 드러낸다.
그러나 관습과 규범이 더욱 강하던 시대에, 주어진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구축해나가는 렘피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파리의 에펠탑을 연상시키는 거대 철제 구조물을 배경으로, 공연 중간중간 드러나는 렘피카의 작품도 볼거리다. 극의 말미에는 렘피카의 그림들이 위에서 내려와 무대를 가득 채우며, 그가 쌓아온 예술 세계에 깊은 울림을 전한다.
작품의 에너지는 음악에서도 두드러진다. 1부 마지막 장면에서 렘피카가 잠든 라파엘라를 바라보며 부르는 ‘WOMAN IS’ 를 비롯해 ‘STILLNESS’, ‘PERFECTION’ 등 팝과 록, R&B 요소가 결합된 주요 넘버들은 인물의 감정을 직선적으로 드러내며 극의 흐름을 이끈다.

이번 작품에는 내로라하는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렘피카는 김선영, 박혜나, 정선아가 연기하고, 라파엘라로는 차지연, 린아, 손승연이 분한다. 각기 다른 조합이 뿜어내는 색다른 호흡과 에너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렘피카’는 6월 21일까지 서울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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