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슈게이징은 고개를 숙이는 행위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내밀한 자아를 직면하는 치열한 시도다. 신발 끝을 응시하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그 찰나, 싱어송라이터 공원(Gongwon·박시은)은 세상이 강요하는 소음으로부터 해방돼 자신만의 ‘물과 구름’을 발견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기타 노이즈라는 파도 위로 부유하는 윤슬이다. 때로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터뜨리는 불꽃놀이처럼 서글픈 찬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이 비워진 ‘0’의 상태에서, 슬픔마저 자신을 지키는 무기가 된다고 나직이 고백한다. 최근 발매한 두 번째 EP ‘0’이 그 증거다.
불모지 같은 인디 신에서 독보적인 감수성으로 피어난 이 ‘능동적 고립’의 미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든든하고도 투명한 위로의 문장으로 다가온다. 이번 앨범은 모든 것이 비워진 상태 ‘0’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담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기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유기적인 트랙으로 엮어냈다. 타이틀곡 ‘나의 무기’는 울음과 상처를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닌,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이자 ‘방패’라는 선언이다.
공원은 인디 신의 대형 루키로 공인 받고 있다. CJ문화재단 인디 뮤지션 지원사업 ‘튠업’ 26기에 선정됐다. 최근 종영한 JTBC ‘싱어게인4’에선 ’61호 가수’로 출연, 톱10에 진출하며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확보했다. 지난달 26일 열린 한국의 그래미 어워즈인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KMA·한대음)’에선 ‘올해의 신인’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조혜림 한대음 선정위원은 “보편적이지 않은 독특한 감수성을 품은 신인의 탄생”이라고 평했다. 다음은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위치한 공원스크립트 B1 청음실에서 열린 ‘0’ 발매 기념 청음회에서 조혜림 평론가와 공원이 나눈 문답을 정리한 것이다. 자신의 활동명이 들어간 해당 장소에서 공원은 누구보다 솔직했다. 앨범 수록곡 ‘물과 구름’을 라이브로 들려주기도 했다.
-공원 님, 팬분들을 바로 앞에서 보고 계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첫째 줄은 눈이 정말 잘 마주치는데 말이죠.
“되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너무 좋네요.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설레고 긴장도 됩니다.”
-인터뷰 이후 시간이 꽤 흘렀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인터뷰 당시가 ‘싱어게인’ 출연 전이었어요. 그 후 방송 활동도 열심히 하고, 바로 이어서 앨범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이번 앨범 제목을 ‘영’으로 읽어야 할지, ‘제로’로 읽어야 할지 궁금해하는 팬분들이 많아요.
“‘영’ 아니면 ‘공’으로 불리길 원했는데, ‘영’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시은과 공원 사이
-실제 모습과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생각보다 키가 크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또 목소리가 낮다는 이야기나, 제가 하는 음악에 비해 성격이 차분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식당 등에서 알아보는 분들이 생겼을 텐데,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단히 많이 알아봐 주시지는 않지만, 주변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 때가 있어요. 최근에는 자주 가던 빵집에서 소금빵을 사는데 사장님이 알아봐 주셔서 영수증에 사인을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공원’이라는 활동명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제 성이 ‘박’ 씨라서 ‘박공원(Park)’으로 시작된 농담 같은 시작이었어요. 하지만 평소 제가 즐겨 찾는 공간이기도 하고, 누구나 언제든 자유롭게 도피할 수 있는 일상 속 공원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 결정했습니다.”
-본명 ‘시은’으로 살 때와 아티스트 ‘공원’으로 살 때의 차이가 있나요?

“시은으로 살 때는 감정을 그냥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지만, 음악을 하는 공원으로서는 그 감정을 승화시켜야 하기에 좀 더 의지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소음의 벽(Shoegaze) 속에 숨겨진 내밀한 위로
-공원 님의 목소리는 슬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진중한 매력이 있어요. 스스로를 위로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감정이 잘 극복되지 않을 때 일기장을 들고 카페에 가요. 필터링 없이 일기를 쓰다 보면 감정의 근원을 발견하게 되고, 현실적인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대중음악상’ 노미네이트 등 ‘루키’로서 인정받고 계신데, 슈게이즈 장르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 졸업 후 저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많은 공부를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의 공통점이 ‘슈게이즈’적인 요소라는 걸 알게 된 후 확신이 생겼죠. 지금도 그 매력에 계속 빠져드는 중입니다.”
-평소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신가요?
“외로움을 많이 느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외롭고 싶어 하는 굴레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외로울 땐 친구를 찾기도 하는데, 최근 가장 친한 친구가 제주도로 내려가서 자주 통화하며 달래고 있습니다.”
-‘공원다운’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울함이나 외로움을 느끼지만, 산책이나 일기 쓰기 같은 치열한 노력을 통해 거기서 벗어나려 하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이 음악으로 풀려나와 무대 위에서 비로소 위로를 얻을 때가 가장 저다운 순간 같습니다.”
◆’0’에서 시작해 ‘나’라는 원을 완성하는 자기 고백
-이번 앨범 ‘0’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앨범이에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숨김없이 직면해야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거든요. 내 안의 밑바닥 감정들까지 다 꺼내놓고 마주하는 순간을 담고 싶었습니다.”
-‘물과 구름’의 가사 속 ‘물’과 ‘구름’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이 곡은 녹음 때 감정이 너무 올라와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었을 만큼 진심을 다한 곡이에요.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고여있는 ‘물’ 같은 사람이었겠지만, 음악 덕분에 ‘구름’처럼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곰팡이’라는 이미지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자기혐오의 감정에서 시작된 곡이에요. 처음 인트로에서의 ‘곰팡이’가 스스로를 미워하는 슬픈 억압이었다면, 곡의 마지막에서는 그런 나조차 사랑스럽게 받아들이는 미소를 머금은 온도로 변화합니다.”
-가사가 없는 ‘인터루드(Interlude)’ 트랙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앨범을 듣는 분들이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각자만의 감상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었어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형의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답을 찾아보길 바랐습니다.”
-곡 작업을 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나요?
“하고 싶은 말이 먼저 있어야 해요. 이번에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명확했기에 곡이 써졌습니다.”
-앨범을 완성한 후 달라진 점이나 새로운 포부가 있다면요?
“평소 앨범 발매일에는 생일날처럼 우울해지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후련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음악인으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더 생겼습니다.”
◆곰팡이 같은 우울을 고마움으로 꽃피우는 소리의 대화(팬들과 대화)
-‘곰팡이’ 가사에 ‘움으로 끝나는 어떤 마음들’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고마움’ 같은 희망적인 의미도 염두에 두셨나요?
“처음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열하다 보니 그렇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희망을 드리고 싶었던 제 진심이 잘 전달된 것 같아 감사합니다.”
-곡을 쓰실 때 가사가 먼저인가요, 멜로디가 먼저인가요?
“가사나 감정의 정리가 먼저입니다. 그 감상에 따라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붙는 스타일이에요.”
-‘자장가’의 마지막 페이드 아웃은 어떤 의미인가요?
“슈게이징 사운드가 여린 과거의 나를 보호해 주는 벽이었다면, 페이드 아웃은 그 벽이 걷히고 비로소 혼자 남았을 때도 완전해질 수 있는 ‘성장’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망설임을 지우고 비로소 마주한 진심
-음악을 시작하려던 1년 전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해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때는 두려움과 겁이 많아 망설였거든요. 지금의 제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앞으로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신가요?
“솔직함이 곧 진심이고, 진심이 담겨야 살아있는 음악이라고 믿어요. 갈수록 더 솔직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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